서양 복식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시대별로 변화하는 패션에는 권력, 신분, 미의 기준이 담겨 있지만, 때로는 이런 권위 있는 역사 뒤에 엉뚱하고 웃긴 이야기들이 숨어 있죠. 오늘은 조금 가볍고 웃픈 복식사의 뒷담화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주로 17~18세기 유럽 귀족들의 패션을 중심으로, 그 화려함 뒤에 감춰진 ‘냄새 문제’, ‘민망한 단어 금기’, 그리고 ‘패션 때문에 벌어진 대소동’ 세 가지 재미난 일화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프랑스 귀족들의 ‘파우더 가발’ 냄새 논란
18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상징과도 같았던 파우더 가발은 어떻게 보면 패션 혁명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에는 위생 개념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머리를 깨끗하게 관리하기 어려웠고, 머리 감는 것도 불편했죠. 그래서 사람들은 가발을 사용했고, 하얗게 가루를 뿌린 파우더 가발이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이 ‘파우더’가 문제였어요. 가발 위에 뿌려진 가루가 머리에서 비듬처럼 떨어져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면 악취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당대의 귀족들은 냄새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온몸에 뿌렸는데, 향수 냄새와 체취가 섞여 더 역겨운 냄새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런 파우더 가발에 벌레가 기생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벌레가 가발 속에서 기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오늘날 우리 눈에는 꽤나 끔찍하지만 당시에는 감내해야 할 ‘패션의 대가’였던 셈이죠.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며 이 화려한 가발 유행도 한풀 꺾이게 됩니다. 옛 귀족들의 냄새나는 가발 이야기는 패션의 화려함 뒤에 숨어 있던 웃픈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팬티’ 단어 금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서면, 복식뿐 아니라 사회적 언어 사용에도 엄격한 규범이 생겼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언어 생활에서 ‘팬티(panties)’라는 단어는 거의 입에 올릴 수 없는 민감한 단어였어요.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영국 사회는 엄격한 도덕 기준과 예절을 중시했는데, 속옷에 관한 이야기는 무척 조심스럽게 다뤄졌습니다. 팬티라는 단어를 공공장소에서 말하거나 글로 쓰는 것은 거의 ‘외설적인 행위’처럼 간주되었죠.
그래서 당시 궁중이나 상류층 사회에서는 팬티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속옷’, ‘언더웨어’ 같은 완곡어법을 사용했습니다. 한 번은 누군가가 궁정에서 팬티라는 단어를 실수로 입에 올렸다가 주변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며 급히 화제를 돌렸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웃긴 에피소드는 지금 보면 사소한 단어 하나가 얼마나 시대와 문화에 따라 민감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금은 팬티가 일상어가 되었지만, 그 시대에는 ‘팬티’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단어였던 거죠.

3. 르네상스 남성들의 ‘코디피스’ 때문에 벌어진 화장실 대란
르네상스 시대 남성들의 옷차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코디피스(Codpiece)’입니다.

코디피스는 바지 앞부분을 덮는 삼각형 모양의 천으로, 원래는 위생과 편의를 위한 장치였지만 점차 ‘남성성’과 ‘권력’을 상징하는 화려한 액세서리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코디피스가 점점 커지고 과장되면서 실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화장실 이용이 매우 까다로워졌는데, 궁정에서는 ‘코디피스 착용자는 반드시 하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규칙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한 신하가 급한 마음에 혼자 화장실에 갔다가 코디피스가 걸려 옷이 찢어지고 만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궁중에서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코디피스가 너무 커서 넘어지거나 걸려 넘어지는 사고도 빈번했다고 하니, ‘패션 대참사’라고 부를 만하죠.
이 일화는 당시 남성들의 권력 과시에 얼마나 무리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패션이 불편하면 곤란하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마무리하며: 웃음으로 보는 복식사의 또 다른 얼굴
이처럼 서양 복식사에는 권력과 미의 상징뿐 아니라, 때로는 웃음이 나오는 사소한 해프닝과 일화들이 가득합니다. 파우더 가발의 냄새 문제, 팬티라는 단어의 금기, 그리고 코디피스 착용자들의 화장실 대소동까지,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역사를 좀 더 친근하고 흥미롭게 다가가게 합니다.
패션이라는 것이 단순히 ‘옷을 입는 행위’ 그 이상임을, 그리고 시대별 문화와 사회가 어떻게 의상에 반영되는지를 알게 해 주는 동시에, 그 이면에는 웃음이 숨어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다음에 르네상스 회화나 바로크 시대 초상화를 볼 때, 인물의 옷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이런 재미난 뒷담화도 떠올려 보시면 더 풍성한 감상이 될 겁니다. 옷 한 벌 한 벌에는 단순한 미의 추구뿐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방식, 고민, 심지어 웃음거리까지 담겨 있으니까요. 역사는 거창한 이야기뿐 아니라 이렇게 소소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복식사를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그 시대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